장자13 천뢰를 듣다 - 소요유 남곽자기는 책상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동안 온몸에서 생기가 사라져 버리면서, 혼이 나간 빈 껍데기처럼 변해갔다. 곁에서 모시고 있던 안성자유가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살아 있는 몸뚱이가 마른 나무처럼 굳어버리고, 마음 또한 불 꺼진 재처럼 되어버리다니...지금 책상에 기대 앉은 사람은 앞서 책상에 기대 앉은 선생님이 아니로구나." 이때 자기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언을 불렀다. "언아, 방금 나는 나를 잃었는데, 너도 그것을 알고 있었더냐?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너는 인뢰(사람의 음악)는 알고 있어도 지뢰(땅의 음악)는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설령 지뢰를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천뢰(하늘의 음악)를 듣는 경지에는 이르지 .. 2009. 2. 1. 무하유지향 - 소요유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고 가죽나무라 하더군. 나무 둥치가 옹이투성이라서 먹줄조차 댈 수 가 없고, 가지는 꾸불꾸불해서 자로 잴 수 조차 없는 형편이네. 그 때문에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를 않네. 자네의 논의도 말은 그럴 듯하지만 결국은 그 나무와 다를 바가 없네. 세상 사람들이 상대할 턱이 있겠나?" "그럼 살쾡이는 어떤가?" 하고 장자는 받아넘겼다. "살쾡이는 가만히 몸을 숨기고 먹을 것을 노리다가 단숨에 확 달려드네. 어떤 곳에서라도 날쌔게 뛰어 돌아다니지.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게 되네. 그것에 비하면 들소는 마치 하늘을 덮은 검은 구름처럼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갖고 있지만, 생쥐 한.. 2009. 1. 29. 큰 표주박의 용도 - 소요유 혜자가 이런 말로 장자를 비꼬았다. "전에 위왕으로부터 큰 표주박 씨를 얻은 일이 있었네. 그것을 심어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표주박이 어찌나 큰지 닷 섬이나 들어가지 않겠나? 거기에 물을 가득 담으면 무거워서 들 수도 없었다네. 그래서 반을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커서 물독에 들어 가지 않았네. 크기는 컸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지라 그만 부숴버리고 말았다네." 그 말을 장자는 이렇게 받아넘겼다. "자네는 정말 큰 것을 쓸줄 모르는 사람이군 그래. 이런 이야기가 있네. 송나라에 대대로 실을 세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네.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그의 집에는 손이 트지 않는 신기한 약을 만드는 비방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네. 어느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 약 만드는 비방을.. 2008. 10. 26. 소용없는 상품 - 소요유 어떤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관을 많이 사가지고 월나라로 장사를 떠났다. 그런데 월나라에 가서 보니 그곳 사람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몸에는 먹물로 그림을 그리고 지냈다. 따라서 문명한 나라 사람들이 쓰는 관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요는 선정을 베풀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었으므로 의기양양하게 묘고야란 산속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신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요는 거꾸로 신인들에게 압도되어, 서울교외에 있는 분수가에 돌아와서도 정신이 멍해 세상사를 아득히 잊었다. 2008. 10. 26. 요순도 발톱의 때 - 소요유 견오가 연숙에게 말했다. "접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떻게나 떠벌리는지, 어디까지가 이치에 닿는 것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소. 정말 질리고 말았소. 마치 구름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뿐이라서, 보통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요." "대체 어떤 이야기였소?" "어디 한번 들어보겠소? 그의 과장은 이런 정도요. '묘고야란 산에 신인이 있는데, 살결은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처럼 나긋나긋하다. 바람을 받아들이고 이슬을 마실 뿐, 곡식 같은 것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어떤 때는 구름을 타고, 또 어떤 때는 용을 타고 우주 밖에서 노닌다. 별로 하는 일은 없지만, 신인이 있다는 것만으로 상처를 입거나 병이 든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온갖 곡식이 다 잘 익는다.' 그의 말은 모두 이런 식이오. .. 2008. 10. 26. 포인과 시축 - 소요유 요가 허유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태양이 떠올라 있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짓이오. 또 때 맞추어 비가 땅을 흠뻑 적셔주었는데도 논밭에 물을 주는 것은 불 필요한 짓이 아니겠소? 선생 같은 분이 나타났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천자의 지위에 앉아 있겠소?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 "지금도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있소. 그러한 지금 내가 새삼스러이 천자가 된다면 나는 천자라는 이름을 바라는 것이 되지 않겠소? 이름이란 실상의 부수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나더러 부수물이 되라는 말씀이오?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가지 한 개를 필요로 할 뿐이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만 차면 족한 것이오. 부디 분부를 거두어 주시오. 천하가 주어져도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소.. 2008. 10. 2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