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상대적인 것은 저것과 이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삶과 죽음,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등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모든 사물은 서로 의존하는 동시에 서로 배척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속박됨이 없이 생성 변화하는 자연에 순응할 뿐이다.
이것 또한 어떤 입장에 근거한 판단임에 틀림없으나 이 입장에서보면 이것과 저것은 상대적이 아니며, 양자는 동시에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다. 즉 양자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같이 하여 나와 다른 것의 대립을 해소시키면 개별적인 존재를 초월하여 도추의 경지에 이른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문짝의 지도리가 고리를 축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끝없이 변화하면서 그 무궁한 변화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도추의 경지에 이르면 옳고 그른 것의 대립이 해소된다.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손가락의 개념을 분석하여 그 말이 존재로서의 손가락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고, 말이라는 개념을 분석하여 그 말이 존재로서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논증한 사람이 있다.
만일 이들 궤변론자들이 이러한 논리로 우리들의 인식 능력이 불완전함을 강조하려 한다면, 그 방법은 오히려 잘못된 것이다. 개체를 초월하면 손가락이라는 존재는 손가락이면서 손가락이 아니고, 말이라는 존재는 말이면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상대성을 초월한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손가락 하나도 천지라 할 수 있고, 말 한 마리도 만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말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의 구별이 명확하다. 도는 무한히 변화함으로써 완전한 존재가 되지만, 그것이 나타난 하나하나의 사물에 대해서는 그 각각에 해당되는 말이 필요하다.
즉 그런 것은 '그렇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하듯이, 그 뜻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으면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말의 표현 대상인 사물은 원래가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존재다. 따라서 풀잎과 기둥, 문둥병자와 미녀 서시를 예로 든다면, 전자는 그 크기에, 후자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각각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만 역시 동일한 것이다. 또한 아무리 상상을 벗어난 기괴한 사물이라 하더라도 도의 견지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형식뿐만이 아니라 운동에 있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일면 파괴로 보이는 현상도 다른 면에서 보면 완성일 수 있고, 반대로 완성이 곧 파괴일 수도 있다. 즉 일체의 존재는 형식과 운동을 막론하고 어떠한 구별도 없는 것이다.
이 만물제동의 이치를 체득한 사람은 사물을 선택하는 입장이 아니라 사물을 떳떳함, 즉 자연의 형상에 맡길 뿐이다. 떳떳하다는 뜻의 용은 쓴다는 뜻의 용과도 통하고, 이것은 다시 통한다는 통과 통한다. 자연의 작용에는 무리함이 없다. 통은 또 얻는다는 득과 통한다. 무리가 없는 작용을 통해서만 사물은 존재로서의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인식은 만유의 실상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도와의 일체화란 자연에 맡기려는 의식마저도 없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다.
일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경지.....
상대적인 평가와, 그러한 상대적인 평가에 길들여져서 편견이라는 시스템을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쉽지 않은 경지 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만물제동'의 원리는 장자 여기 저기서 볼 수가 있는 주요한 도의 원리 중 하나이다.
인간의 뇌 자체는 좀 더 편리하게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몇몇 간단한 정보들은 단순화 시켜서, 다음 번에 그 정보를 마주쳤을때에도 복잡한 정보처리 과정을 생략하려고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능이 편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만물을 보는데 있어서,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게 되는 상대적 사고 및 편견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것 저것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자세. 그리고 어떠한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을 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같은 기분나쁜 감정을 계속 만들어내는건 아닌가 싶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상대적 행복을 느낄수도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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