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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곽자기는 책상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동안 온몸에서 생기가 사라져 버리면서, 혼이 나간 빈 껍데기처럼 변해갔다. 곁에서 모시고 있던 안성자유가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살아 있는 몸뚱이가 마른 나무처럼 굳어버리고, 마음 또한 불 꺼진 재처럼 되어버리다니...지금 책상에 기대 앉은 사람은 앞서 책상에 기대 앉은 선생님이 아니로구나."

 

 이때 자기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언을 불렀다.

 

 "언아, 방금 나는 나를 잃었는데, 너도 그것을 알고 있었더냐?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너는 인뢰(사람의 음악)는 알고 있어도 지뢰(땅의 음악)는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설령 지뢰를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천뢰(하늘의 음악)를 듣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자세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땅이 토해내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일지 않으면 별일 없지만, 일단 바람이 일면 땅 위의 모든 구멍들이 소리를 내게 된다. 너는 혼자서 긴 바람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느냐? 그 바람이 산 숲을 뒤흔들면 백 아름이나 되는 거목의 갖가지 구명, 즉 우리 몸의 코나 입이나 귀, 혹은 병이나 절구와 같은 물건 모양, 혹은 땅의 연못이나 웅덩이처럼 모양과 깊이가 가지각색인 구멍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구멍에 따라 물이 흐르는 소리,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나오는 소리, 들어가는 소리, 외치는 소리, 곡 소리, 아득히 먼 소리, 새 우는 소리, 위잉하고 울리면 휘익하고 받으며 바람의 힘에 따라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큰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모든 구멍들은 일제히 울음을 그친다. 그러나 아직도 하늘거리는 나뭇가지와 잎들에서 방금 지나간 바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뢰라는 것은 땅 위의 구멍들이 바람을 받아 울부짖는 소리로군요. 모든 구멍이 소리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인뢰는 인간이 불어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되겠습니다만...천뢰란 어떤 것입니까?"

 

 "천차 만별의 사물에 작용하여 스스로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취하지만, 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 '천뢰를 듣는다' 는 것은 일체의 상념을 버려야 비로소 무한한 조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07년도 싸이에 썼던 글

천뢰....자연의 소리보다 한차원 높은 소리라는 해석을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지뢰나 천뢰나 한끝 차이 밖에 없는 듯 하지만, 굳이 차이를 든다면, 지뢰는 소리는 소리이되, 사람이 직접 물리적으로 듣게 되기때문에 인간의 주관이 들어가지만 천뢰라 함은 모든것을 초월한 상태에서 듣게 되는 소리로 보인다. 결론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거 같은데...오랜만에 장자를 보면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처음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랫동안 나는 자연의 소리를 내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 한동안 삶에 찌들여 살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사회속의 소리들만을 계속 들어왔다. 게다가 이동중에는 항상 MP3를 귀에 꽃은 채로 완벽한 인뢰만을 들으며 생활을 하였다.

지난 여름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뒤로 제대로 자연의 소리를 느껴보지 못한 것같다. 풍경을 보러 갔다고 해봤자, 광안리 정도? 하지만 사실 광안리 같이 도심속에 있는 바닷가에서는 왠지 자연의 정감을 느끼기는 힘든듯 하다.

최근에 타지역으로 다녀온, 여행이라고 하면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태안까지의 이동. 천혜의 자연경관이라고 불리는 그 곳에서, 인간들의 실수로 인해 역시나 자연의 소리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자연의 소리를 다시 찾기 위해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곳의 기름을 제거하러 왔는지는 다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인뢰 안에 내재해 있는 천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07년도는 이미 다 끝난간다...

 08년도가 되면 가까운 산이나 한번 다녀오도록 하여야겠다. 간만에 산속에서 조용히 앉아서 자연을 느껴보기 위해, 한적한 산으로 떠나자


그리고 지금 09년.

다시 읽어보지만 이 장자의 글 중에서도 이 글은 이해하기가 너무 힘든 듯 하다. 천뢰를 듣다라....지뢰라는 자연의 소리가 곧 자연스러운 소리 천뢰가 아닌가...스스로 소리를 내게 한다는 것이 자연의 소리와 흡사한데,  여전히 모르겠다. 해석이 잘 못 된건지 확인을 해봐도 그것도 아니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자신의 생각의 깊이는 1mm도 깊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 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사물을 보고, 사회의 현상을 보고 읽고 해석하는 능력의 발전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09년도부터 다시 시작하는 블로그를 통해 좀 깊은 사유의 세계로 빠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블로그는 곧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공부할 수 있는 최첨단 지식의 샘물과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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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고 가죽나무라 하더군. 나무 둥치가 옹이투성이라서 먹줄조차 댈 수 가 없고, 가지는 꾸불꾸불해서 자로 잴 수 조차 없는 형편이네. 그 때문에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를 않네. 자네의 논의도 말은 그럴 듯하지만 결국은 그 나무와 다를 바가 없네. 세상 사람들이 상대할 턱이 있겠나?"


 "그럼 살쾡이는 어떤가?"


하고 장자는 받아넘겼다.


 "살쾡이는 가만히 몸을 숨기고 먹을 것을 노리다가 단숨에 확 달려드네. 어떤 곳에서라도 날쌔게 뛰어 돌아다니지.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게 되네. 그것에 비하면 들소는 마치 하늘을 덮은 검은 구름처럼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갖고 있지만, 생쥐 한 마리 잡을 능력도 없네. 그러나 무능한 것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게 되지. 자네가 그런 큰 나무를 두고 쓸모없다고 걱정할 건 없네. 무하유의 고을 넓은 벌판에다 심어두고 유유히 그 옆을 거닐며, 편안히 그 나무 그늘에서 쉬면 좋지 않겠나? 세상 사람에게 소용이 닿지 않으니 톱질을 받아 넘어질 염려도 없고 가지를 잘릴 걱정도 없네. 소용이 없다고 해서 고민할 까닭은 조금도 없는 것일세."





필요없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많은 장자의 철학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저 역시 강력히 이 말에 동의하구요.


예전에 '기생충 제국' 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기생충의 생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존재의의(?)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기생충에 대해 다른 책으로, 기생충을 좋아하든지 안 하든지 한번쯤은 읽어보면 좋다고 생각되는 과학서적 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기생충의 필요성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되어 있더군요. 기생충들이 일종의 자정작용을 하여 생태계에 존재하는 동물개체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몇몇 기생충은 수컷이나 암컷이 임신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기생충이 없어져서 개체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난 동물에 의해서(읽은지 오래되서 어떤 동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생태계가 급속토록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게다가 학설에서 실제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의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이 '기생충이 없기때문' 이라며, 기생충들이 우리몸의 면역체계를 한 층 더 강화시켜준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심지어는 현직 청와대 높은데 있는 이모씨 역시 전혀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두지않고, 이런 대통령을, 이러한 당을 뽑았다가는 나라에 큰일이 터질 수도 있다는 경각심과 함께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을 하기도 하였으니깐요(이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아~~~ 제발)


자신의 주위에서 평소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던 것들, 무관심하게 방치하였던 것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관계정립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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