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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는 형벌을 받아 한쪽 발을 잃었다. 우사를 여러 해 만에 만난 공문헌이 놀라서 물었다.

"대관절 어찌 된 일인가? 그 발은 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단 말인가? 하늘의 뜻인가, 사람의 뜻인가?"

우사가 대답했다.

"놀라지 말게. 나는 형벌을 받았으나 그것은 사람의 힘이 한 일이 아닐세. 하늘이 나를 한 발만 가지고 태어나게 했을 뿐이네. 사람은 자신이 원해서 한쪽 발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세. 그러니 내가 한쪽 발을 잃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라네. 자네는 들꿩의 기분을 아는가? 그들은 먹이와 물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고 다니지. 그것이 고생스러우나 새장 속에서 편안히 살려 하지는 않는다네.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자유를 원하기 때문일세. 나는 발 하나를 잃은 뒤에야 참다운 자유를 알게 되었네."






장자는 우화로 이루어져 있어서 장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덕분에 그 뜻이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읽을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우화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연유로 가볍게 장자의 철학을 '무위자연' 이라는 한단어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어떻게 보면 장자의 이야기 자체가 무언가 있어 보이게 하려는 수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글쎄 그런 의문이 든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시라!)


우사는 자신의 발을 잃은 것을 사람의 힘이 아님을 말하며 그 속에서 자유를 알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로운 행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발을 잃었는데 진정한 자유를 알게 되었다니?

어쩌면 그 발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흔히 말하듯이 공기와 같이 자신의 근처에 늘상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은 사라졌을 때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 바로 잃어버림은 그 잃어버린 것의 새로운 가치를 일깨울 수 있는 기회의 얻음이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간절히 바라는 것 보다는 그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서 또 다른 소중한 것들에 귀를 기울여 보는 자세를 가지고,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려는 변화가 필요하다.

나 역시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땐 왜 그랬을까?" 따위의 회상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소중한 것을 지켜나갈 줄 아는 자세. 자신의 발전에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소양인 것이다.

과거 대신 현재를,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것이 사라진다면? 저것이 만약 없어진다면?
한번쯤 곧씹어 볼만한 물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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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라의 현자 안합은 위영공의 태자의 스승으로 부임하게 되자 위나라 대부 거백옥을 찾아갔다.

"나는 어떤 사람의 교육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손을 댈 수 없이 혹독하고 경박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남의 잘못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은 어떠한 악행을 되풀이해도 괜찮은 줄로 생각하고 있소. 그대로 두면 나라를 망치는 장본인이 될 것이며, 그렇다고 무리하게 바로잡으려 하면 내가 죽게 될 처지요. 내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겠소?"

거백옥은 대답했다.

"그거 매우 흥미 있는 문제요. 먼저 계속 행실을 조심하여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하오. 그런 다음 상대방에게 공손히 행동하면서 융화를 꾀하는 것이 좋소.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소. 상대에게 공손하다 보면 자칫 상대방의 나쁜 짓에 말려들게 되고, 융화를 꾀하다 보면 자칫 감화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나게 되오. 상대방의 악행에 끌려들면 스스로 몸을 망치는 결과가 되고, 상대방을 감화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나면 당장 화가 미치게 되오. 상대방이 어린아이처럼 장난하거든 함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좋고, 상대가 버릇 없이 행동하거든 함께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이 좋소. 또한 상대가 무모한 행동을 하거든 함께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소. 어디까지나 공손하게 행동하면서 내 덕으로 상대를 감싸고, 나와 동화시키는 것이오. 사마귀의 예를 들기로 하겠소. 사마귀는 물건이 근접해오면, 비록 수레바퀴라 하더라도 앞발을 쳐들고 맞서려 하오. 결국은 당해내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오. 능력을 과신하여 태자에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면 마침내는 사마귀와 같은 운명에 처할 테니 백 번 조심해야 할 거요. 범을 기르는 사람을 예로 들어봅시다. 범을 기르는 사람은 절대로 범에게 살아 있는 먹이를 주지 않소. 그것을 죽이려고 범이 살기를 띠기 때문이오. 또한 절대로 먹이를 통째로 주지 않소. 찢어 먹으려고 살기를 띠기 때문이오. 범을 기르는 사람은 범의 식욕에 따라 먹이를 조절하면서 어느 사이엔가 범의 살기를 없애버려, 마침내는 사나운 범을 완전히 길들이게 되오. 범의 성질에 따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오. 그와 반대로 범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범의 성질을 거슬렀지 때문이오. 아무튼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그릇을 말의 변기로 쓸 정도요. 그러나 이토록 소중히 길러주어도 등에 때문에 갑자기 때리기라도 하면, 말은 재갈을 물어 끊고 미쳐 날뛰어 큰 상처를 입게 되오. 사랑이 원수로 변하는 것이오.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당신도 십분 조심해야 하오."



간만에 장자의 책에서 무작위로 펼친 항목이 바로 인간세 부분의 <범을 길들이는 법> 이라는 글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이 생각이 났다.
안합의 대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교육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손을 댈 수 없이 혹독하고 경박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남의 잘못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은 어떠한 악행을 되풀이해도 괜찮은 줄로 생각하고 있소. 그대로 두면 나라를 망치는 장본인이 될 것이며, 그렇다고 무리하게 바로잡으려 하면 내가 죽게 될 처지요. 내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겠소?
라는 부분이 있다. 딱 들어맞지 않는가? 과연 여기서 우리들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말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귀에 대빵만한 딱지가 붙어 있는 양반에게. 정말 흥미있는 문제이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의 나라를 완전하게 망치는 장본인이 될 인물. 무리하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다가(사실 무리하게 쓴 글도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에서 그 정도의 의견피력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잡혀간 미네르바. 그 외 나라를 조금이라도 바르게 만들고자 앉아서 디지털 세계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많은 분들.

상대방이 어린아이처럼 장난하거든 함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좋고, 상대가 버릇 없이 행동하거든 함께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이 좋소. 또한 상대가 무모한 행동을 하거든 함께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소.
어린아이처럼, 버릇 없이, 무모한 행동을 하는 가카에 대해 우리도 똑같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대응을 하고 있다(어쩌면 아직 그러한 맞대응의 정도가 부족해서 효과가 덜 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라 곳곳에서 어처구니 없이 세력을 잡은 조중동에 반해 진실된 주장과 의견들이 개개인과 몇몇 미디어들을 통해서 다행이나마 퍼지고 있는 중이다. 자기를 뽑아줬다고 온 국민이 병신인 줄 아는 어린아이 같은 대통령. 이야기에서는 공손함과 덕으로써 감싸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부분은 솔직히 공감이 되지 않는다. 자기한테 좋은것들만 흡수시켜주는 필터를 가진 그에게 이러한 공손함과 덕은 곧 자신에 대한 아부나 우러럼으로 보여서 더욱 기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아니 이미 그런 행동을 하고는 있지 않을까? 어쩌면 주요 측근 중에서 이러한 식으로 그를 변화시키려는 자들은 없을까? 아 이런 사람들은 있을리가 만무하겠다. 모두 그냥 대체없는 병신들이니깐

그네들의 말도 안되는 행동에 대응해서 싸우는 우리는 수레바퀴에 달려드는 사마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힘입고 돈있는 자들은 그를 따르며 행동을 취할 것이다(어디까지난 대부분. 전부가 아니고). 결국 힘없는 개개인이 한명 한명 수레바퀴에 뛰어들어서는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는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마귀들이 떼거지로 모여들어서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제거한다면 어쩌면 그러한 문제는 막을 수도 있지않을까? 중요한 것은 곧 단결이다. 촛불의 힘이 부족하여서 완벽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정도의 단결력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국민들의 소리를, 많은 동포들이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와 함께 얼마나 이번 정부가 대책 없는 정부라는건지도 확실히 증명을 하였고.

뛰어난 조련사는 사나운 범의 성질을 알고 바로 그 범을 길들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얍삽한 쥐새끼도 사람들이 그 얍삽함을 알고 길들일 수가 있을까? 생쥐를 조련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길들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될까?

최대한 세상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고자 노력하지만(그래서 용산현장 속보가 터졌을 때, 현장과 관련된 정보가 하나도 없을 때 무조건적으로 정부를 욕하지는 않았다. 곧이어 어떤 식으로 그런 참사가 벌어졌는지 뉴스를 듣고 격분을 하게 되었다)쉽지가 않다.

ㅇ ㅆ ㅂ.

대한민국의 최상위에 있는 쓰레기 껌찰들의 말도 안되는 껌찰결과를 보고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새벽, 횡설수설 쓴 글이라 뭔 소리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나도 결론은 못 내리겠다. 아무튼 지랄같다...ㅇ ㅆ ㅂ

소통이 되야지 감싸던가 덕을 주던가 하지....에라이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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