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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양이라는 자가 벼슬을 얻기 위해 초나라에 왔다. 우선 왕의 측근인 이절을 통해보았으나 왕이 만나주지를 않자 이번에는 왕과를 찾아가 부탁했다. 그러나 왕과는 한마디로 거절하며, 공열휴에게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측양이 그의 사람됨에 대해 묻자 왕과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겨울이면 강에서 자라를 잡고, 여름이면 산속에서 일월을 벗삼아 놀고 있소. 누군가 그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강가와 산속이라고 대답했다더군요. 아무튼 나로서는 저 지혜로운 이절이 못하는 일을 떠맡아 해낼 수가 없소. 이절은 비록 덕은 없지만 굉장히 지혜로워서 늘 겸손학 척, 남과의 교제를 귀시처럼 해나가는 사람이오. 하지만 부귀에 눈이 먼 사람이라 서로 돕고 지낼수록 덕을 향상시키기는 커녕 덕을 손상시키기 일쑤인 인물이오.. 이런 속담을 들은 적 있소? '몸이 언 사람은 봄이 되어도 옷을 빌리며, 더위를 먹은 사람은 겨울이 되어도 찬바람을 쐬고자 한다.' 초나라 임금은 그 사람됨이 존대하고 엄격하며, 범죄자에 대해서는 호랑이처럼 조금도 용서가 없소. 간사한 악당이 달라붙어 그의 마음을 녹이든가, 고상한 인격자가 그 미친 것 같은 마음을 식혀주지 않는 한 방법이 없소. 반면에 성인은 가난하여도 가족이 가난함을 잊고 도를 즐기게 하며, 영달하면 왕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귀함을 잊고 백성들과 동화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오. 어떤 사물이나 적응해 즐기고, 어떤 인물과도 교제해 즐기지만 결코 자기를 잊는 일이 없소. 그러기에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을 평화롭게 하고 함께 사는 사람드을 감화시켜나가오. 아버지와 자식이 있어야 할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덕을 순수한 마음으로 베푸니 마치 천지의 덕과 같소. 그러기에 공열휴를 찾아가서 부탁하라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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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장자를 펼쳐서 본 페이지에 나온 글. 장자책을 두고두고 보면서 여기저기를 뒤적였는데 오늘 본 글은 흡사 처음 본 느낌의 글 같았다. 하지만 의미는 장자의 그것과 일치하는듯하다(보통 잡편들의 글이 장자가 직접 쓰지 않은 글이란 말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딱 보는 순간 '아 이거다' 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은 진실로 어디에도 적응하고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른 말들보다 이 말이 요즘 가장 와닿는 느낌의 구절이다.

나는 항상 나자신이 어디에나 적응을 다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요 몇년 사이에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며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생겨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적인 사회생활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새로운 일들을 접하며 점차 사회의 혹독함에 대해 느껴가며, 나이가 들수록 나라는 존재에 대한 한계를 조금씩 인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디에나 적응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위적인 적응, 가식적인 교제.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일까?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한치의 가식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없을 것이다. 그나마 이 가식의 허울이 절실히 필요한 업무를 하지 않은 덕분에 어느정도 타인에 비해 스트레스라는 것을 적게 받으며 생활해 나가고 있지 않나 싶다.

자유로운 사귐속에서 모두와 함께 즐기며 그들이 힘든 현실속에서도 웃음을 잃지않고 그 곳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나 자신이 진정 가식이란 악세서리를 없애고 모든 것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나가자...이것이 곧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약에 불을 지펴주는 시초이자, 지속적인 연료가 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다는 인식을 한단계 뛰어넘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끌어안는다면 세상은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선 남을 헐뜯지 않음에서 시작하자(하지만 헐뜯음과 충고, 걱정은 종이한장의 차이가 있는거 같기도 하다....)


Posted by 윤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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